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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시즌을 마지막으로 TML이 역사 속으로 사라진 뒤에는 라뉴(La New) 베어스가 이 구장 주인이 됐습니다. 1982년 출범한 프로야구 개막전도 함께하는 등 동대문야구장은 한국 야구 역사 그 자체였다. 1981년 12월에 열린 연고지 선수 대상 드래프트에서 28명의 선수와 1982년 2월 13일에 열린 2차드래프트에서 대구상고를 졸업하고 한국화장품을 거친 내야수 조호와 광주 숭의실고를 졸업하고 실업야구 홍익회에서 뛰던 투수 박석채를 뽑았다. 3연속 우승의 중심에는 괴물 투수 신인식이 있었다. 1963년 - 9월 21일부터 서울운동장에서 열린 제5회 아시아 야구선수권대회에서 한국이 마침내 일본에 처음으로 승리를 거두며 첫 우승의 기쁨을 누렸다. 11월 11일부터 26일까지 니카라과에서 열린 슈퍼월드컵대회에서 미국과 일본 등을 꺾고 우승의 기쁨을 만끽했다. 미국과 치른 준결승전에서 더그 민케이비치에게 끝내기 홈런을 맞아 2-3으로 고배를 마셨다. 김건우, 조계현, 이효봉, 김동기, 강기웅, 조양근 등 고교 선수에 나이 제한(18세 이하)에 걸리지 않은 선동열(당시 고려대)과 구천서(당시 상업은행)가 포함된 청소년대표팀은 3전 2승제로 열린 미국과 결승전에서 3-1, 3-2로 연승하며 정상에 올랐다. 지난, 두번의 푸에르토리코 와의 평가전 일정에서는 단 1실점도 내어주지 않았던 투수들의 빼어난 피칭 과 더불어서 두경기에서 9득점이나 만들어 내었던 타선에서의 응집력 역시 나쁘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대회 일정을 자신감 있게 진행하고 있다는 점 역시 다시한번 우승권에 도달해 있는 실력이라는 것을 확인할수 있었습니다..
1학년이던 1955년 제10회 결승에서 대회 3연속 우승을 노리던 인천고를 맞아 연장 12회까지 1실점으로 완투하는 괴력을 발휘했다. 동아일보가 주최한 이 대회 첫 패권은 경기중학(현 경기고)을 9-3으로 꺾은 경남중학(현 경남고)이 차지했다. 1981년 - 7월 미국 오하이오주에서 열린 제1회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1998년 - 박찬호, 서재응, 임창용, 김동주, 이병규, 박재홍 등 국내외 프로야구 스타와 김병현, 홍성흔, 신명철, 파라오카지노 강혁 등 아마추어 선수들로 꾸린 대표팀이 방콕 아시아경기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경남고 신민기는 1997년과 1998년 최초이자 유일하게 2년 연속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1957년 - 동산고가 동향의 라이벌 인천고를 3-1로 꺾고 유일하게 청룡기대회 3연속 우승을 달성했다. 1992년 청룡기대회 결승에서 공주고 노장진이 선린상고(현 선린인터넷고)를 상대로 두 번째 결승전 노히트노런을 기록했다. 1981년까지 마이너리그에서 활약한 그는 프로야구 출범과 함께 OB(현 두산)에 입단해 22연승을 포함해 24승을 올리며 팀을 원년 우승으로 이끌었다. 1990년에는 감독으로 LG를 우승으로 이끌었다. 첫 홈런은 1928년 6월 8일 이영민이 기록했다. 5월 17일부터 19일까지 서울운동장에서는 광복 후 첫 야구대회인 4도시대항 야구대회가 열렸다. 1947년 - 8월 21일부터 26일까지 서울운동장에서 예선을 거친 8개교가 참가한 가운데 전국지구대표 중등야구쟁패전(황금사자기)이 열렸다.